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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천문 이야기를, 그 밖에 과학 기술 등 관심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그입니다. 제 분야 아닌 얘기도 종종 하겠군요. 좋은 의견 많이 나눠서 더 크고 더 넓은 세계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원글은  http://www.flower-wolf.com/percivallowell.htm 에 있었으나 2014.7.4일 현재 사이트가 폐쇄되어서, 임시로 이 블로그로 옮겨서 올림)

  

 

 

100여년 전 조선(朝鮮)조경(造景) 속으로 떠나는 정원여행

리뷰 : 내기억속의 조선, 조선사람들(퍼시벌 로웰 지음,조경철 옮김,예담출판)

 

 

100여년전 조선의 조경을 찾아 미국인 천문학자이며 여행가인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을 따라 정원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을 위해서는 로웰의 조선 방문기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천문학자인 조경철 선생의 적절하고 면밀한 번역을 통해 예담 출판사에서 2001년 11월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100여년전의 조선과 조선사람들을 과학자로서 섬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외국인들의 단편적인 여행기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조르주 뒤르크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이 담고 있던 당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시선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로웰이 조선에 도착한 시기는 1883년 12월이다. 1883년은 한국인이 공식적으로 처음 미국에 건너간 해로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서광범, 고영철, 현흥택, 최경석, 변수 등으로 구성된 보빙사(조선의 특별 사절단)의 파견이 그것이었다. 로웰은 보빙사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보답으로 고종황제의 귀빈으로 그해 겨울 서울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로웰이 유길준,주경석,이시렴,김낙집,민영익,서광범,홍영식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으로 그의 조선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짐작케한다. 로웰에 의해 재생된 100년전의 조선과 조선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해서 그의 눈을 통해 직접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아마도 우울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보다 밝고 활기차기까지 하다. 그의 책을 꼼꼼하게 음미하며 되새겨보도록 하자.(위쪽 사진은 미국 보빙사 일행을 찍은 것으로 왼쪽 두 번째가 로웰이 아닐까 추측함)

 

이 책의 26장 ‘자연친화적인 조선의 조경’과 27장 ‘왕궁구경’에서 로웰은 조선의 조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양인의 눈에 생생하게 비친 조선의 조경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품안으로 맞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미의 극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웰은 극동(일본에 외교관으로 10년간 체류함)의 자연과 예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조선의 선비들처럼 교양인으로서 예술에 대해 진지하고 높은 안목을 가지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풍경을 담아낸 조경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했으며 “극동의 예술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서 영감을 끌어 낸다. 자연은 극동 예술이 추구하는 대상이며 따라서 이제까지 서양 예술에서 매우 경탄하며 연구해 온 예술과는 다르다.”(p.226)며 '자연친화적인 조선의 조경'에 관한 그의 생각을 풀어 내고 있다. (위쪽 사진은 책에 실린 '덕수궁 뒤에서 본 풍경')

로웰이 ‘극동 예술의 진기한 표본’인 조경(landscape)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는 조경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 조경의 특징을 ‘물의 정원’과 ‘바위 가꾸기’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설명은 조선 조경의 표현 기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에 눈에 비친 조선의 조경은 미에 대한 표현에 있어 “오묘한 그 무엇”과 “기괴하게 보이는 것”일 수 밖에 없을 그것을 조선인들의 “친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로웰의 깊이있는 사색과 글쓰기의 맛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눈을 통해 본 조선의 조경은 여행가가 직접 일일이 대조해 가며 살펴보고 그 감상을 적어내었다고 믿어지며 그것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에서는 일본에서처럼 정원에 많은 손질을 가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일본은 일본 열도의 토양을 거의 인간의 손으로 가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선의 조경에는 이러한 인공적인 미 대신에 쇠퇴해 가는 자연의 장중함이 있다. 왜냐하면 훌륭한 정원의 석조물은 해가 지나면서 퇴락해 가는 데 이러한 모습이 정원 전체의 특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27장 p.239) (위쪽 사진은 책에 실린 '왕국의 모퉁이')

위 글에서 조선의 조경이라는 단어는 영어 원문(예담 출판사의 편집부에 근무하는 원미연씨가 확인해 주었음)에 따르면 ‘landscape’라고 한다.  따라서 ‘조선의 경관에는 이러한 이러한 인공적인 미 대신에 쇠퇴해 가는 자연의 장중함이 있다.’ 라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웰이 본 것은 북한산의 승경이 아니었으며 조선사람들이 만들어 낸 왕궁의 정원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번역문 그대로 ‘조선의 조경’이라고 읽는 것이 보다 문맥이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웰의 조경양식에 대한 관심은 그가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뉴욕의 셑트럴파크를 조성한 옴스테드를 통해 조경이라는 단어를 이미 알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로웰은 조선의 조경의 특징을 일본과 비교해 ‘쇠퇴해 가는 자연의 장중함’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쇠퇴와 퇴락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줄을 읽어 본다. (위쪽 사진은 '신궁의 뜰'이라는 제목의 사진임)

“왕국에는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몇 개의 연못이 섬들과 어우러져 있다. 때로는 냇물이 흘러 그 위에 석교가 놓이기도 하는데 시간과 기후가 석교의 돌들을 균열시키고 틈을 만드는 가운데, 잡초와 잔디가 자라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p.239)

그것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살아 있는 경관의 흐름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한국의 조경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웰은 decay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역자는 쇠퇴, 퇴락이라고 번역하였다. decay의 뜻을 야후! 영어사전에서 보면 ‘1<물건이>썩다, 부패하다, 상하다(▶ 서서히 나빠지는 자연적인 변화를 뜻함); 『理』붕괴하다. ㆍ ∼ing vegetables 썩어가고 있는 야채. ’, ‘2<사람·사물이> (힘·건강·아름다움 등의 점에서) 쇠퇴하다, 저하하다, 쇠약하다, 시들다; 타락하다. ㆍ a ∼ing village쇠퇴하는 마을. ’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퇴락하는 자연의 장중함 ‘decaying grandeur of nature’을 이해하는 것이 100년전 고종황제의 귀빈으로 조선의 조경을 이야기하는 로웰의 조경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예담출판사는 기꺼이 원문을 제공하기로 하였기에 미처 출간되지 못한 부분을 계속해서 실어 보고자 한다.100년전이라는 시기는 미국에서도 조경이 시작된 때라는 점에서 그의 조경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은 동시대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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